
즐기는 공부
독일의 심리학자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Forgetting Curve)이라는 게 있습니다. 공부한 직후 머릿속에 남은 지식이 시간이 지나면서 얼마나 사라지는 지를 곡선으로 표기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업시간에는 분명 이해를 했는데 쉬는 시간이 되어 책을 덮고 나면 다음 시간에는 기억이 가물가물해집니다. 구체적인 부분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학생들이 공부를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망각기능이 작동하기 전에 공부한 것을 복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적을 올리는 공부방법
시험성적을 올리는 목적이라면 공부하는 ‘방법’을 알면 훨씬 효과적입니다. 내 경험상 가장 효과적이었던 두 가지 방법을 말해보라면, 첫째가 ‘누적 복습’입니다. 누적 복습으로 공부하면 머릿속에서 잊힐 만할 때 처음부터 리마인드를 해주기 때문에 기억이 명확해집니다. 누적 복습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예를 들어, 어제 1페이지부터 10페이지까지 배웠고 오늘 11페이지부터 20페이지까지 배웠다면, 누적 복습 방법으로 하는 학습은 어제는 1페이지부터 10페이지까지 복습하고 오늘은 1페이지부터 20페이지까지 복습하는 방법입니다. 앞에 배운 것을 절대로 망각하지 않게 됩니다. 시험성적을 올리는 데는 탁월합니다.
두 번째 효과적인 공부방법은 ‘백지 쓰기’입니다. 시험범위가 1페이지부터 20페이지라면, 먼저 내용을 공부한 후에 책을 덮고 시험범위 내의 내용을 백지에 순서대로 적어보는 것입니다. 아는 것 같은데 적다 보면 못 적는 부분이 반드시 생깁니다. 완전히 내용을 이해하고 암기해야만 가능합니다. 하나도 빼지 않고 내용을 다 썼다면 어떤 문제가 나와도 답안을 쓸 수 있습니다. 이것도 시험성적을 올리는 데는 정말 탁월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부분은 ‘우리가 배우는 공부가 그저 시험성적을 올리는 목적인가?’입니다.
공부는 배움이면서 즐거움이고 행복입니다. 논어의 가장 앞에 위치한 테마가 학이(學而) 편입니다. 공자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고 했습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보다 더한 기쁨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의미는 우리가 찾아야 하는 진정한 기쁨은 많은 돈이나 명예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배움으로 아는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배우는 방법
배우는 방법은 여러가지입니다. 삶에서 직접 체험으로 배우는 직접 배움이 있고,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이 경험하고 깨달은 바를 배우는 간접 배움이 있습니다. 그 간접 배움 중에서 나는 고전독서를 우선으로 추천하는데 이는 고전이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깨달은 결정체이기 때문입니다. 고전독서는 나를 알고 내 꿈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문학고전은 인간의 마음을 알게 하고 철학고전은 인간의 생각을 알게 하며 역사고전은 인간의 삶의 패턴을 배우게 합니다. 마크 트웨인은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책은 당신이 가장 많이 생각하도록 해주는 책이다”라고 했습니다. 고전은 바로 그 생각하는 힘을 길러줍니다.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논어 위정(爲政)편에는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라고 했습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메타인지(Metacognition)입니다. 우리가 어떤 지식을 아는 것 같아도 양파껍질 까듯 두세 번만 물어보면 모릅니다. 진짜 알아야 할 핵심은 모르고 껍데기만 아는 것입니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모르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나를 아는 것 같아도 사실 잘 모르는 부분이 더 많습니다. 내 꿈이 무엇인지 찾고자 할 때도 내가 나를 알고 모르는 만큼의 범주안에서 구체화시킬 수 있습니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수업시간에 시험을 치는데 20문제짜리 문제 중 대여섯 문제를 풀다가 시험지를 덮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마음먹고 이 문제들 풀면 다 맞힐 수 있는데요, 지금은 그냥 풀고 싶지가 않아요.”
그런데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매번 마음을 먹지를 않았습니다. 이 학생은 결국 고2가 되어서 진로를 미대로 바꾸었지만 그림조차 비슷한 태도로 대했습니다. 미술담당 선생님이 그림 숙제를 20장 내줬는데 3~4장만 제대로 그리고 나머지는 제출일까지 그리다 말았습니다.
이는 이 학생이 배움에 대한 즐거움이 전혀 없기 때문이고, 메타인지를 애써 무시했기 때문이며, 본인의 삶이 아니라 남을 의식하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배움은 즐거움입니다.
모르는 것을 배우다 보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배움은 즐거움입니다. 아무거나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내 적성에 맞고 내가 알고 싶은 것을 배울 때 그렇습니다. 말콤 글래드웰이 자신의 책 '아웃라이어'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을 얘기했습니다. 한 분야를 1만 시간 파면 그 방면에 전문가가 된다는 주장입니다. 맞습니다. 김연아가 수많은 시간을 연습했기 때문에 피겨스케이팅의 전 세계 일인자가 됐던 것처럼, 물리적인 훈련의 시간도 매우 필요합니다. 그럼 아무거나 1만 시간을 파면됩니까?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이 당기는 것, 자신이 즐기는 것에 집중할 때 그 효과가 나타납니다.
온라인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비즈니스를 하는 친구의 부탁으로 영어 고전문학을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맥베스'와 '베니스의 상인'을 2년간 가르쳤었는데 학생들 중에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자녀를 다 키우고 나니 본인이 예전에 그렇게 하고 싶었던 영어 문학 공부를 뒤늦게 하는 것입니다.
70대 할머니가 셰익스피어 영어 원전을 공부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즐기며 공부해서 그런지 단 한 번도 수업에 빠진 적이 없습니다. 비록 발음이 좋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꿈에 도전하는 그 모습이 더 존경스러웠습니다. 내가 더 감사한 마음에 영국 셰익스피어 생가에서 사 온 가죽 책갈피를 선물로 보내 드렸습니다. 언젠가 이분들을 모시고 영국으로 셰익스피어 인문학여행을 떠나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
논어 옹야(雍也)편에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라고 했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는 뜻입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즐기는 공부. 그것이 최고의 공부입니다. 나의 알고 모름을 깨닫고 그 깨달음으로 나를 정확히 알고 그 앎의 기쁨이 즐거움이 되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거 깊이 파고드는 것. 그것이 진정한 공부입니다. 학교에 적용하면 즐거운 학과공부가 되고 인생에 적용하면 행복한 인생공부가 됩니다.
그 옛날 공자도 공부의 원리를 알아 이렇게 말했는데, 현실의 우리는 공식을 외워 시험성적을 높이느라 스스로 몹시 고달프고 불행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즐거움과 행복을 위한 공부일까요 아니면 시험성적을 위한 공부일까요? 내 삶을 위한 공부일까요 아니면 부모님을 위한 공부일까요? 누구를 위한 공부일까요?
내 딸들을 위한 '우리가족 논어캠프'를 중국 산동성 칭다오(青島)에서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산동성은 공자의 고향이며 공자의 사당이 있어서 논어캠프 진행을 하면 교육효과가 큽니다. 공자 사당을 방문하고 저녁에는 숙소에서 논어 옹야편 한 구절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 내용을 풀어주었습니다. 아이들과 이 구절을 함께 암송했습니다. 암송 후에는 공부에 대한 자신이 느낀 점을 발표하였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지금도 이 구절을 외웁니다. 무턱대고 하는 공부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고 즐기는 자로서 공부하려는 생각을 마음에 심었습니다.
by 루아흐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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