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에 전략적인 학부모
내가 교감으로 근무했던 대안학교에서 부임직전 있었던 얘기입니다. 학교에 학부모님 한 분이 오셔서 입학상담을 하셨습니다. 자녀가 초등학생인데 공교육 학교에 보내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IT혁신대안학교에서 공부를 시키고 싶은데 조건이 하나 있다고 했습니다. 졸업할 때 서울대나 MIT 입학이 가능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학부모님께 질문했습니다.
“자녀를 공교육 학교에 보내는 시간이 왜 아까우세요?”
이 질문에 학부모님이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게 없잖아요. 어차피 영어, 수학은 다 학원에서 배워요. 이미 초등학교 졸업 전에 중고등학교 수학을 다 떼고 가는데 학교에서 그 시간에 한참 떨어지는 수업을 들어야 하잖아요.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학원에서 수학이랑 영어랑 배울 거 알아서 다 공부시킬 수 있으니까 차라리 그 시간에 여기에서 대학 진학에 도움 되는 코딩수업 배워서 명문대학교 보내는 게 나을 거 같아요.”
학교에 보내기에 시간이 아깝다고 한 것은 어차피 학원에서 실제 해야 할 공부를 다 하니 굳이 학교에 보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요즘 앞서 가는 학부모님들은 이런 효율적인 생각을 하나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목적입니다. 이 분은 자녀의 적성을 살려서 대안학교를 찾은 것이 아니라 서울대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학교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안학교를 찾은 목적이 자녀가 좋아하는 코딩을 공부하게 해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서울대나 MIT를 보내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학교교육이 어디 효율성만 따지는 곳일까요??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전인교육은 어디로 갔나요? 이 학생은 성적은 좋았지만 결국 선발되지 않았습니다. 대안학교에 면담을 올 정도면 이 학부모님은 자녀의 미래를 위해 나름 많이 고민하고 찾아왔을 것입니다. 자녀를 향한 이 분의 열정은 뜨거운 박수를 받을 만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녀를 위한 올바른 고민이었는지 아니면 결국 학부모 자신의 목적을 위한 것인지는 분명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행학습의 폐단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학생수는 계속 감소하여 대학교에 가기가 더 어려워지다 보니 사교육을 통해 선행학습 수준이 점점 더 올라가고 있습니다. 또한 학생들 수준이 올라가 변별력을 주기 위해 시험문제는 더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대학교는 과거보다 더 서열화되어 좋은 학교는 학생들이 더 몰리고, 그렇지 않은 학교들은 학생이 없어서 폐교를 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습니다.
선행학습이 너무 과열되어 강남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아이가 수학 문제를 못 풀었더니 선생님이 “너 학원 안 다니니?”라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이럴 바에 학교가 왜 존재하는지 궁금합니다. 초등학생 선행학습의 갭이 너무 크게 올라간 분위기 자체가 우리나라 교육이 처한 가장 큰 구조적인 문제겠지만 학생이 학원에 다니던 안 다니던 문제를 못 풀었다고 교사가 첫마디에 학원 안 다니느냐고 물었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너도나도 다 학원을 다니며 선행학습을 하다 보니 교사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그 학년에 배워야 할 수준의 문제를 미리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 상황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배우는 아이들이 행복할지가 정말 궁금합니다. 배움 자체보다는 경쟁 속에서 남을 이기는 짜릿한 감각만을 배우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세상이 인생학교
유튜브를 보면 '세상이 인생 학교'라며 가족과 전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들은 캠핑카를 타고 다니며 전 세계를 온몸으로 느끼는 인생 공부를 합니다. 특히 유럽사람들이 많은데 한국사람들도 있습니다.
공영방송에 나왔던 한국인 가족이 남미, 미국, 중국, 일본을 거쳐 현재는 독일에서 4년째 살고 있는 경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6개 국어를 구사합니다. 독일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회 부회장인 아들이 세계를 직접 체험하게 해 준 엄마 아빠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한국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주인이 이 학생을 애지중지합니다. 어떤 나라 손님이 와도 그 나라말로 다 대응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가족에게는 세상이 학교입니다.
옛말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습니다. 여행은 직접경험이고 살아있는 교육입니다. 해볼 수만 있다면 ‘해외에서 한 달 살기’는 우리 자녀들의 인생을 지금보다 훨씬 풍요롭고 지혜롭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만일 한 달 살기를 적용해 본다면 자신에게 맞는 테마를 선정해서 나라를 선정하면 됩니다. 나는 인생에서 자신의 꿈과 비전을 찾아가는 모든 경험의 시간들이 다 가치 있고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청소년 시기는 아직까지 자신만의 길을 찾지 못한 상태이고 자신의 기질과 성격과 재능 및 은사와 연계하여 길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 있기 때문에 어떤 과정은 무가치하고 어떤 과정은 가치 있다고 무 자르듯 말할 수 없습니다.
자녀교육은 기다림입니다. 자녀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모차르트처럼 어릴 때부터 특별한 재능을 드러내 보여주지 않는 이상, 우리는 어린 나이에 자녀를 100% 파악할 수 없습니다. 자녀가 조금씩 보여주는 모습과 행동과 말과 습관 및 관심사를 통해서 알아가는 것입니다. 진짜 아까운 시간은 오직 명문대학만 바라보느라, 자신의 적성에 맞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 것을 억지로 해야 하는 시간이고, 자녀의 나이에 맞는 전인교육에 필요한 다양한 경험과 체험을 하지 못하는 시간입니다.
by 루아흐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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